압구정 3구역이 5조원짜리라고? 부린이를 위한 강남 재건축 해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로 꼽히는 압구정의 재건축 시공사가 또 한 곳 정해졌습니다. 압구정 3구역이라는 곳인데 현대건설이 가져갔어요. 공사비만 5조 5610억원으로 단일 정비사업 기준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이 숫자가 왜 큰지 감이 안 잡힐 수 있는데 보통 1조원짜리 재건축도 대형 사업이라고 부르거든요. 5조원짜리는 그 자체로 사건입니다.
먼저 재건축이라는 게 뭔지 짚고 갈게요. 오래된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는 사업인데 집주인들이 모여서 조합을 만들고 그 조합이 건설사를 고용해서 공사를 시킵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천 가구짜리 단지를 통째로 짓는 일감이라 어마어마한 매출이 걸려 있어요. 그래서 건설사들이 좋은 입지의 재건축 사업장을 따내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이걸 "수주전"이라고 부릅니다.
압구정은 한강 바로 옆에 붙어 있고 강남 한복판이라 입지가 최상급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지어진 현대아파트가 워낙 유명해서 "압구정 현대"라는 이름 자체가 부의 상징처럼 쓰여요. 이 압구정 일대 재건축 지역이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3구역이 가장 큰 덩어리입니다. 기존 현대 1~7차, 10·13·14차, 대림빌라트 등 3934가구를 부수고 최고 65층짜리 5175가구로 다시 짓는 계획이에요.
흥미로운 건 현대건설이 이번 3구역에 단지 이름을 자기네 하이엔드 브랜드인 "디에이치" 대신 그냥 "압구정 현대"로 쓰겠다고 한 점입니다. 보통 건설사들은 자기 브랜드를 박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래미안(삼성물산), 자이(GS건설), 아크로(DL이앤씨) 같은 이름이 붙느냐 안 붙느냐로 집값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현대건설이 자기 브랜드를 포기한 건 "압구정 현대"라는 이름이 가진 50년 헤리티지가 자기네 브랜드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신축인데 50년 된 이름을 다는 셈입니다.
이번 수주가 더 의미 있는 이유는 현대건설이 이미 작년 9월에 압구정 2구역(공사비 2조 7489억원)도 따냈기 때문이에요. 2구역과 3구역을 합치면 압구정에서만 8조 3000억원어치를 가져간 겁니다. 그리고 오는 30일에 시공사를 뽑는 5구역까지 노리고 있어요. 5구역은 한양 1·2차 아파트를 1397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1조 5000억원짜리 사업인데 여기서는 DL이앤씨와 맞붙고 있습니다. 단독 입찰이었던 2구역, 3구역과 달리 5구역은 진짜 경쟁이 벌어지는 거예요.
현대건설이 압구정 2·3·5구역을 다 가져가면 한강변에 "압구정 현대 벨트"가 만들어집니다. 같은 브랜드, 비슷한 설계 컨셉으로 묶인 거대한 단지군이 한강을 따라 늘어서는 거죠. 현대건설이 이걸 "원 시티(One City)"라고 부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부린이 입장에서 알아두면 좋은 게 이런 "벨트"가 형성되면 그 일대 집값이 통째로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옆 단지가 비싸지면 내 단지도 같이 비싸지는 효과 때문이에요.
참고로 압구정 4구역은 이미 지난 23일에 삼성물산이 가져갔습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와 협업해서 2조 1000억원에 1641가구 규모로 짓는 사업이에요. 이렇게 압구정에서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영역을 나눠 갖는 모양새가 되고 있습니다.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이번 수주 한 방으로 현대건설은 올해 정비사업 누적 수주액 6조 6474억원을 찍으며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랐어요. 2위는 GS건설(4조 7000억원)입니다. 현대건설은 작년에도 1위였는데(8년 연속 1위 목표) 올해도 굳히기에 들어간 셈이죠. 정비사업 수주액이 건설사의 한 해 성적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매년 연말이 되면 "올해 정비사업 1위는 어디"라는 기사가 단골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압구정 3구역에 제안된 내용을 보면 재건축 트렌드가 어디로 가는지 감이 잡혀요. 미국의 유명 건축사 람사(RAMSA)와 모포시스(Morphosis)가 외관 설계에 참여하고, 단지 안에 1.2km 짜리 실내 순환 산책로를 만들고, 호출하면 오는 무인셔틀(DRT)이 단지를 돌아다니고, 배송 로봇과 순찰 로봇이 단지 안을 누비는 식입니다. 요즘 강남권 신축 아파트가 단순히 "집"이 아니라 "도시 안의 도시"처럼 설계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예요. 커뮤니티 시설 규모만 4만 5000평인데 광화문광장 4배 크기입니다. 이런 흐름이 결국 분양가와 시세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부동산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압구정 재건축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흐름을 따라가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